서울대 인구학자인 조용태 교수의 인구 미래 공존이라는 책을 읽었다.
인구문제와 저출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 재밌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그동안 갖고 있던 저출산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이 책으로 인해 많이 풀렸다.
아래 내용은 책의 내용에 내 생각을 더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우리나라의 지나친 인구 편중을 꼽는다.
동물의 가장 원초적 본능인 생존과 번식. 그러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번식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 역시 기본적으로 본인의 생존과 후대 재생산의 본능을 지니고 있으며,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재생산을 포기하게 된다. 보통 도시국가에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실제 영토는 상대적으로 넓은 편임에도, 모든 인프라와 일자리와 인구가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도시국가와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 도시국가의 특성이란 간단히 말해 제한된 자원에 대한 경합이다. 높은 집값, 높은 임대료로 인한 높은 물가, 그 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 교통, 여가,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구성원간 자원의 경합이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자원이 부족하게 되면 생존에 위협을 받고, 결국 재생산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리거나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즉,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인구 편중으로 인해 발생한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문제를 푸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초저출산 문제는 풀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수도권 집중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교육, 인프라 모두 중요하지만 결국 인구를 끌어당기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다. (울산 등지에서 일하는 현대차 생산직 공채에 몰린 엄청난 경쟁률을 보자. 100명 뽑는데 18만명 지원.[3]) 100대 대기업 중 99개 기업의 본사가 수도권에 있는 상황에서 모든 청년은 수도권을 꿈꿀 수 밖에 없다. 단순히 대기업을 꿈꾸는 청년들 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 문화적 인프라를 블랙홀처럼 수도권이 빨아들이고 있다.
수도권을 분산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정책 중 하나가 공공기관 분산 정책, 혁신도시다. 좋은 취지의 정책이다. 그러나 진행 결과, 공평하게 나눠야한다는 강박적인 정치적 이유 때문인지 전라, 경상, 강원, 충청 등등 전국 각지 10곳에 이 기관들을 찢어놓았다. 허허벌판에 공공기관 몇개씩 놓여있는 형국이다. 그 결과 규모 있는 자생적 도시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세종을 참고해보자. 양질의 일자리가 모이면, 학군은 자연히 좋아지고, 경제력 있는 인구가 모여있으니 문화나 다른 인프라도 결국 따라오기 마련이다. 세종시의 출산율은 거의 1.3으로 최근 몇년간 압도적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세종시의 대부분은 공무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즉 우리나라 청년들도 안정적인 직장과 거주, 출산 관련 복지 등 환경만 갖추어지면 아이를 낳고 키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좋은 지표다.
공공기관 분산 정책, 혁신도시를 만들 때 거점 도시를 하나 잡아서 신도시로 키웠으면 지금쯤 세종시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와 양질의 학군, 인프라가 구성되어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혁신도시는 어떠한가? 기관들이 전국 각지로 찢어져서 시너지를 내기는 커녕 비효율만 양산하고 있다. 정책 실패다. 그 기관을 세종시처럼 한군데로 모았다면 인구 20-30만 규모의 자생적인 거점 도시를 만들거나, 혹은 기존 거점도시를 훨씬 성장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행복시 및 혁신도시 대상으로 조사한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연구(2017)에서 공공기관 이전으로 이전 지역 지방세 수입 증가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지역총생산(GRDP)과 고용 비율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 정책 효과성분석(2021)에서도 이전 후에 경영 효율성이 감소했다. 또 다른 연구의 DEA 분석(2021)에서 경영 및 재무 효율성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4]
우리나라 제2도시인 부산의 상황은 어떨까?
부산은 제2도시니 알아서 잘하고 있을것이라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난 그랬다) 실제론 제2도시인 부산마저 젊은이들이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수도권으로 순유출이 일어나는 상태다[1][2]. 부산이 이 상태니 다른 지방도시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손놓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수도권에 버금갈 수 있는 메가시티가 필요한데, 아무것도 없는 곳에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거점을 새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있는 수도권의 대안은 부울경을 메가시티로 키우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전국을 모두 고르게 발전시키는 건 실현 불가능한 꿈이란 것을 인정해야 한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서울의 중력에 대항할 수 있는 거점을 잡아서 집중시켜야하는데, 안타깝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국가의 10년뒤, 20년뒤 미래는 크게 관심이 없다. 당장 눈앞의 인기투표에 이길 수 있는 지역주의적, 단기적 정책을 반복하고,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의 인기투표에서 승리한다. 민주주의의 한계다.
지난 2022년 대선토론에서 지방 균형발전은 주요 토론 아젠다에 올라가지조차 않았다. 영화 돈룩업처럼, 지구 온난화 문제처럼, 모두가 문제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적극적 해결에는 놀라울만큼 무관심하다. 그나마 안철수 후보만 스스로 이 아젠다를 꺼내서 주요 문제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다른 후보들의 의견을 들어보려 했으나, 형식적인 코멘트만 있었을 뿐 활발한 토론을 촉발시키지는 못했다.
[2] 인구문제를 다룬 MBC 특집 로드맨. 특집 전체를 다 봤다. 볼만하다. 추천.
[3] 현대차 기술직 공채에 '18만명' 몰렸다…경쟁률 500:1
[4] 경북도민일보 - 2차 공공기관 이전 성공적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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