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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들

출산, 육아 정책과 페미니즘

by 엔지니어의 노트 2022. 8. 23.
 

[단상] 저출산과 인구문제 (인구 미래 공존을 읽고 01)

인구 미래 공존 - 교보문고 인구학의 눈으로 기획하는 미래 | 2020년 인구감소 시작, 2030년 인구절벽 현실화정해진 미래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데드크로스(Dead Cross).인구학에서 태어난

socrates-dissatisfied.tistory.com

서울대 인구학 조영태 교수의 "인구 미래 공존"이란 책을 읽었다.
인구문제와 저출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 흥미롭게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동안 갖고 있던 저출산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이 책으로 인해 많이 풀렸다.

위의 포스트에서는 '인구 미래 공존'에서 거론된 저출산의 원인, 도시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글은 책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남녀 갈등 이슈와 페미니즘 이슈는 책에서 거론되지 않는다. (인터뷰에서는 거론한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장기적으로 가장 주요한 것은 도시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출산율은 2016년 전까지 1.2~1.3 사이 등락을 반복하다가 2016년부터 이전에 보이던 등락 패턴이 사라지고 급락이 시작된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나온 해가 2016년이다. 이 무렵 부터의 시대정신은 출산과 육아는 곧 여성 커리어의 끝이며, 여성의 삶에 저주와 같다는 인식이다.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과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겹치는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는데는 다른 원인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건데, 그 중 또 다른 주요한 원인은 2017년부터의 급격한 집값 상승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은 종종 과하게 표출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정반합의 과정을 따르리라 생각한다. 미국에는 flat earth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한국에는 일베충도 있고 메갈도 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부적응자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연히 도태 또는 정화될 것이다. 

결국 래디컬 페미니즘은 도태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시스템이 개선되어야할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출산 및 육아 지원 시스템, 사회적 인식 모두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핵가족, 맞벌이에 대한 고려

대부분 가정이 핵가족, 맞벌이 육아 체제인데 반해 이를 받쳐줄 정책과 사회적 시스템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기는 아직도 너무 힘들다. 

엄마 아빠가 8시까지 회사에 가려면 8시에 집을 나서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빨라야 7시다. 그런데 유치원 버스는 9시가 되어야 오고, 3-4시면 끝난다. 그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직장은 없다.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근처에 시간 여유가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면 다행이고, 아니면 돌봄 이모를 고용해야 한다. 유치원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학원 차를 타고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등등 다른 학원을 뺑뺑이 돈다. (그러다 종종 학원버스에 치이는 비극적인 사고도 일어난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보육시스템의 구멍은 태권도 학원이 메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유치원이 끝나면 태권도학원에서 알아서 픽업해가고, 태권도가 끝나면 또 다음 학원으로 각각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가장 최악은 예외상황이 발생했을 때다. 아이들은 아직 면역력이 완벽히 발달되지 않아 1년에도 며칠씩 몇번을 아프기 마련이다. 아이가 갑작스레 오늘 밤부터 열이 나면 내일 당장 어린이집에 갈 수 없다. 밤늦게 급히 회사 휴가를 조정하고, 혹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느라 재앙이 펼쳐진다. 열은 보통 하루가 아니라 3일, 4일은 예사로 간다.  본의 아니게 할머니, 할아버지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도움을 요청하는 민폐를 끼친다. 애초에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유지될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운 첫째 덕에 둘째도 낳아볼까 고민하지만, 이런 현실들을 경험하고 나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싫어 외벌이를 하자니, 치솟는 집값이 맞벌이로 버는 노동소득보다도 빠르게 오르는데 외벌이로는 무덤에 묻힐 때까지 내 집을 갖지 못할 것 같아 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외통수다. 
육아는 수년간, 길게는 거의 20년간 계속되는 장기전인데, 대부분 정책이 '출산'과 '출산 직후'에 맞춰져 있다. 물론 출산 직후 복지도 아직 충분하진 않다. 
하지만 그 이후는 더 심각해서, 조부모, 돌봄 이모, 태권도 학원이 책임져야 한다.
이전 세대는 대가족과 외벌이가 많았으므로 가족단위에서 육아가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 세대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집에서 쉬고만 있지 않는다. 따로 사는 것은 당연하고, 각자의 바쁜 삶이 있다. 현재 시스템은 이러한 가족 구조와 맞벌이 부모에 대한 고려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심각하다. [1]

 

외벌이
외벌이는 곧, 둘중 한명은 경력이 단절된다는 이야기다. 대체로 남성이 일을 하고 여성이 가족을 돌본다. 그동안 받은 고등 교육과 쌓아온 직무 경험을 사회에 환원, 기여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아진다면 이것은 국가적, 사회적 손실이기도 하다. 일할 인구가 부족한 인구부족 시대에 일할 수 인구 중 절반을 잃는 것은 사회적으로 더더욱 큰 문제다.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갈 수 있게, 혹은 잠시 쉬었더라도 다시 그 경력과 지식을 되살려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번 경력이 단절되면 업계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심지어 당연해 보이는 육아휴직 조차 쓰는 것이 쉽지 않다. 

 

육아휴직

제도는 비교적 잘 정비된 것 '같아 보이는' 육아휴직 같은 부분에 있어서도 사회적 인식과 시스템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출산휴가를 3개월 이상 가기에 눈치보이는 회사가 아직도 많다. 믿기지 않지만 출산을 이유로 해고하는 회사들도 아직도 많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2-3년씩 연달아 가는 직원을 '민폐'라며 흉보는 일도 보인다. 다른 팀원들 입장에서는 누군가 한명이 빠지면 그 일을 나눠서 더 해야한다. 한명 까지는 어떻게 나눠서 하더라도 두명, 세명의 휴직자가 한팀에 나오면 팀원들도 감당이 힘들어진다. 이쯤되면 그 팀에서 출산이란 축복 받는 일이라기보다 남들 눈치부터 봐야하는 미안한 일이 된다. 육아휴직을 갈 때 제대로 대체인원을 채우지 않는 (혹은 채우더라도 core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임시직으로 채우는) 회사 시스템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육아휴직자들을 본의아니게 다시 한번 '민폐'로 만든다. 

 

게다가 육아휴직을 다녀올 수 있는 회사라고 해도,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승진에서 밀리는 것이 당연히 여겨진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이미 과장인데, 휴직하고 돌아오면 혼자만 대리다. 1년만 밀리는 것도 아니다. 휴직전엔 임신중이라 일을 100% 못한다고 밀리고, 휴직 복직 첫해라서 밀리고 이래저래 밀리다보니 2-3년씩 승진이 밀려야 하는 육아휴직자는 억울하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힘들게 들어온 직장인데, 혼자만 뒤쳐지는 것 같다. 출산을, 육아휴직을 하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2] 

 

독일과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니 아예 발상을 바꿔서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가산점을, 또 육아휴직을 보낸 팀원들에게도 가산점 혹은 보너스를 주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불이익을 안줄까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산점을 준다고..? 이렇게까지 역발상은 못했는데, 참 기발하다. 되는 나라들은 역시 다르다.

 

가족에 대한 인식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 안에서 사랑을 담아 아기를 만들고 키워 내는 일을 사회에서 축복받고 소중한 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 대체자가 와서 대체가 가능할 것이지만, 한 아이에게 주어지는 부모의 사랑은 정확히 그 시기, 그 엄마 아빠만이 줄 수 있다. 대체가 불가능하다. 

유전자 관점에서도, 인류의 구성원 관점에서도, 우리 후손을 사랑으로 키우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혹시 스티브잡스처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혁신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아인슈타인처럼 인류 수준의 과학적 성과를 더 내야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이 인류 입장에서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니 거기에 더 집중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그들도 가족과 자식이 있었다. 사실 그렇게 뛰어난 유전자일 수록 유전자를 더 많이 남겨주는 것이 인류에 더 이득이다.)

 

위와 같은 가족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가 자본주의를 배워 온 서구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인식이다. 가족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최우선 순위로 두며 모두가 그러한 선택을 존중하는 인식. 
인터넷에서 본 어느 독일 아빠의 육아휴직 후기[3]가 인상깊다.

동료 반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고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이기도 합니다. 무척 호의적이고 육아휴직 쓰는 것 자체를 축하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심지어 잘 모르는 파트너사 직원들에게까지 축하를 받았습니다. 
독일은 누군가 육아휴직 쓰면 제깍제깍 충원되냐구요? 물론 프로젝트나 팀별로 최대한 사내에서 충원하기는 하지만 100% 충원될 리가 없습니다. 제 이탈리안 동료 한 명은 제가 없는 동안 많은 야근을 했을겁니다. 저한테 다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고 평생에 손 꼽을만큼 아이와 길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놀랄 만큼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정말 여기는 아기를 축복으로 여기는 나라구나 싶었습니다. 와 한번쯤 정말 경험해보길 잘했다 싶었어요.

이외에도, 내가 경험한 미국 회사에서는 근무 일과중 당당하게 "9:00~10:00 kids fetch time", "16:00~17:00 Family Time" 등으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아이를 키우는데 필수적인 시간은 스케쥴에서 Block해놓는 일이 매우 많다. 일반 팀원이건, 매니저건, 디렉터급이건 할 것 없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회사 캘린더에 박아놓는다. 그 시간은 가족과 보내야하니 회의를 잡지 말란 뜻이고, 이러한 문화를 서로 존중한다. (물론 그 시간에 못한 일이 있다면 저녁이든 주말이든 알아서 책임감 있게 끝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서구 문화의 껍데기, '시스템'만 급히 베껴쓰다보니 그들을 지탱하는 정신, 문화 중 좋은 점을 함께 배우는데는 실패했다.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경제성장'과 '돈', '커리어'와 같은 가치만이 최우선이 되어버렸다. 그 문화는 그대로 가족 단위에도 그대로 전이되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돈을 버는 일, 커리어보다 가치 없는 시간이나 후순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한 가족과 관계의 해체가 일어난다. 기러기 아빠라는 기형적인 가족 형태까지 생겨난다. 가장 가까운 관계의 해체에서부터 우리나라 자살율 문제도 기인한다고 본다. 

 

결론은, 우리 사회의 정책, 시스템과 사회적 인식 모두 갈 길이 멀다.
그러나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시스템이 바뀌면 인식과 문화는 또 금새 따라오는 법이라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변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적응하는 문화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금은 답도 없어 보이는 이 모든 문제도 정부에서 진심으로 미래를 위해 정책과 시스템을 다시 쓴다면 해결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참조

[1] 매일경제 - 시터 이모님 400만원 드리고 나면 남는 것은?…퇴직 고민하는 워킹맘

[2] 세계일보 - 육아휴직 ‘그림의 떡’… 女 경력단절·男 승진포기 각오해야 [연중기획 - 청년, 미래를 묻다]

[3] 독일 (아빠) 두 달 육아휴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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