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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울산 살기 후기 (1) - 노잼도시 울산? 살기좋은 도시 울산?

by 엔지니어의 노트 2023. 10. 8.

 

서울에서만 평생을 살다가, 가족의 회사 발령 때문에 인생의 계획에 없던 일이 생겼다. 울산에서 몇 년을 살게된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회사도 모두 서울에 있는데 아무 연고도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는 지방에 가서 어떻게 살지? 

부모님 도움없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지? 대표적인 노잼시티가 대전, 울산이라는데 가면 뭐하고 지내지? 

걱정거리도 많았고, 선택권이 있다면 당연히 울산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막상 살아본 이후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울산에서의 삶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평생 살아온 수도권에서 인구과중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 자연에 가깝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사는 곳"에 대한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울산의 첫 인상 

우리 가족은 모두 서울 촌놈이다. 평생 서울에 살면서 강원도나 제주도 여행 정도나 가끔 가는. 지방 도시는 광역시급 외에는 뭐가 어디있는지도 잘 모르고 여행도 많이 다녀본적 없는. 그만큼 울산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어렴풋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산업도시.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이런 것들. 

 

가족이 울산으로 급하게 발령이 나는 바람에, 급하게 전세집을 구하기 위해 울산에 내려온 첫 날. 

처음 울산에서 받은 첫인상은 딱 한마디로 줄일 수 있다. 공업도시.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 거대한 표어가 쓰여있는 현대중공업 공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이다.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꼰대스러운 표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저 표어를 보는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지금의 선진국 대한민국을 있게 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몇 십년 전 그때 그 시절의 열정과 결의가 느껴졌다. 말 뿐만 아니라 그 결의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 내고, 또 실제로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으로 만든 거니까. "한강의 기적"의 한강은 서울에 있지만 사실 그 기적은 울산의 이 기업들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일인가?

울산에서 만나는 택시기사 아저씨들마다 울산이란 도시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뿜어내셨는데, 그럴만 하다. 지금도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의 큰 축을 맡고 있지만, 몇 십년 전에는 아예 대한민국의 경제를 울산에서 멱살잡고 하드캐리했었으니까.

 

 

이제 아래에서 1. 거주비용, 2. 물가, 3. 교통, 4. 자연환경, 5. 인프라, 6. 사람 순서로 울산이 살기좋은 이유 몇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마지막으로는 지방에서의 삶의 단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거주비용

서울, 수도권과 지방의 거주비용 차이는 누구나 잘 아는 뻔한 얘기다.

하지만 사실 이 차이가 서울과 지방의 삶의 질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서울과 지방에 살면서 똑같이 7천만원을 버는 가구가 있다고 해보자. (울산의 평균소득은 수도권과 함께 전국 1, 2위를 다툰다. 2022년 기준 약 6800만으로 전국 도시 중 유일하게 수도권(7000만)과 비슷한 수준이다. [1])

울산과 전국의 소득. 울산은 수도권에 이어 2위. 출처 : 울산매일 [1]

 

그런데 울산의 집값은 서울의 반도 채 안된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왠만해서는 10억 밑으로 30평대 집을 구하기가 힘든데, 울산에서는 3억이면 왠만한 신축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 [2].

울산과 서울의 집값 차이 - 20년도부터 9~10억 차이가 난다. 출처: 경상일보 [2]

 

이 가격차이가 가져오는 삶의 질의 차이는 실제로 엄청나다.
예를 들어 7천을 벌어서 세금 및 생활비 떼고 3천씩 매년 저축을 한다고 해보자. 10년이면 울산에서 집을 마련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노후준비를 제외한 남는 모든 돈을 여가나 취미에 써도 되는 것이다.

반면 서울에서는 똑같은 식으로 30년(!)을 저축해도 내집을 마련할 수 없다. (32년이 필요하다) 평생 일해도 살 곳을 마련할 수 없는 이런 환경속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사치가 될 수 밖에 없다. 높은 집값은 이미 가진 현재 세대가 다음 세대에 퍼붓는 저주나 다름 없다.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더 쉽다.

워낙 집값 차이가 있으니 자기자금이 각각 울산이 2억, 서울이 4억. 서울에 유리하게 가정해보자.
울산에서 3억원짜리 주택을 1억 대출(자기자금 2억, 30년 만기, 연 5.2%) 받아 산다고 가정해 계산하면 월 원리금이 약 55만원이다. 서울에서 10억원짜리 주택을 6억을 대출(자기자금 4억, 30년 만기, 연 5.2%) 받는다고 가정하면 월 약 330만원을 상환해야한다. 


소득이 7천인 경우 세금 떼고 월평균 실수령액이 480정도 되는데, 이중에 울산사람은 55만원을 떼면 약 420만원으로 생활하게 되고, 서울사람은 원리금 330을 떼고 150만원이 남는다. 2023년 기준 3인가족 최저생계비는 266만원이다. 이 예시에서 울산에서는 3인 가족 중 1명만 벌어도 충분히 살만하지만, 서울에서는 맞벌이를 통해 생활비를 마련하거나, 가장이 투잡을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각각 울산과 서울에서 주택담보대출로 주택을 마련해 사는 사람들 중, 서울사람의 삶이 얼마나 더 치열할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30년만기 4억 연 5.2% 대출 시 예시
서울 아파트 평균 월 상환액. 이자 5.5%시 국평(84) 아파트 월상환액 248만원. 평균 가처분 소득의 약 60%를 이자로 내야 한다. [3]

 

(전 하나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인 채상욱 애널리스트가 이야기하기를, 서울에는 전국에서 모인 부동산 투자 수요가 있는 반면 울산에는 투자 목적보다는 실거주 목적이 대부분일 것을 고려하면, 울산 정도의 집값이 이 정도 소득의 사람들이 순수하게 거주목적으로 거래하고자 하는 집값에 가까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수도권과 울산의 소득수준이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과 울산의 집값의 차이가 바로 투자/투기 수요와 실거주 수요 만큼의 차이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1. 거주비용 하나 이야기했는데 벌써부터 서울의 삶에 정이 떨어지려고 한다.

안그래도 집값 때문에 살기 빡빡한데 생활물가는 또 어떤가? 아래는 그 이야기를 해보자.

 

2. 물가

울산의 물가는 지방중에서는 비싼 편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면서 부산에서 왔다는 디자이너와 이야기하다보니 부산보다도 울산이 더 비싸다더라. 그래도 서울에 비하면 훨씬 싼 편이다. 

 

삼겹살을 예시로 들어보면, 서울에서는 삼겹살 1인분이 대체로 1.5만원 정도일 때, 울산 동네 삼겹살집들은 1인분에 8천원, 9천원인 곳도 많았다. (2023년 물가가 오르면서 서울은 1.8만원, 울산은 만원 정도가 된 것 같다.) 처음에는 그래서 냉동삼겹이나 수입산인가 의심했다. 또 삼겹살집마다 반찬이 어찌나 정갈하고 푸짐하게 잘나오는지.. 

울산에 가서 처음 삼겹살을 먹던 날, 이 가격에 이렇게 잘 나온다고? 함정이 뭐지? 수입산인가?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결국 이런 외식 물가도 부동산 가격과 연동될 수 밖에 없다. 비싼 부동산 - 비싼 상가 가격 -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자영업자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하고 물건도 더 비싸게 팔 수 밖에 없다. 서울의 임대료가 울산 대비 약 4배 비싼 점을 감안하면 물가가 비싼 것이 당연하다. [4]

 

서울에서는 원래 온라인 또는 대형 마트에서만 장을 봤는데, 울산에는 대형 마트도 있지만 재래시장도 꽤 많다. 재래시장에서 과일이나 야채 같은 것들을 사면서 또 다시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3-4만원에 사던 몸통 만큼 큰 수박 한통을 단돈 만원에 살 때 한번 놀라고, 각 천원씩 주고 할머니에게 건네받은 상추와 깻잎의 양이 비닐봉투를 터질만큼 가득 채워서 또 놀란다. 덕분에 여름이면 거의 매주 수박을 한통씩 먹었다.

 

물가 뿐만 아니라, 울산의 자영업자들, 음식점 등의 운영시간은 서울보다 훨씬 여유롭다. 아침부터 밤까지 1년 365일 오픈하는게 당연했던 서울의 음식점을 생각하고 음식점을 방문하면 반드시 헛걸음을 할 일이 생긴다. 일주일에 최소 하루씩은 쉬는 가게들이 대부분이고, 저녁시간이 지나면 문도 일찌감치 닫는다. 서울에서 가듯이 그냥 가고싶은 곳에 별 생각없이 '당연히 열었겠거니..' 갔다가 도착해서 문을 닫은 것을 발견하고 헛탕을 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가기 전에 항상 오늘은 이 식당이 여는 날인가 확인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손님 입장에서는 원할 때 못가는 것이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한결 더 여유롭게 영업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서울사람들이 원래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결국 위에서 이야기한 거주비용과 임대비용의 차이에서 올 것이다.

 

아래 통계청 자료를 보면 평방미터당 소규모 상가 임대료가 울산이 1.4만원일 때 서울은 4.9만원, 거의 4배에 가깝다.

즉 울산 사장님이 임대료로 80만원을 낼 때 서울에서는 임대료로 300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사장님들도 집이 있어야 하니 위 1. 거주비용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거주에 드는 비용도 서울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거기에 생활물가도 더 높은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서울이 사람도 훨씬 많고 상권도 비교할 수 없이 훨씬 크고 매출도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깔린 지출 금액이 몇 배는 더 크기 때문에 삶도 훨씬 더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몇 배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출처 - 통계청 KOSIS

 

쓰다보니 생각보다 말도 많아지고 밤도 깊어졌다. 3. 교통 4. 자연환경 5. 인프라 6. 친절은 다음에 이어서 써봐야겠다.


(울산에 대한 애정이 담긴) 울산 시리즈

울산 살기 후기 (1) - 노잼도시 울산? 살기좋은 도시 울산?

울산 살기 후기 (2) -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삶

(카공족을 위한) 울산 전망 좋은 뷰맛집 카페 모음 (워케이션)

 


참조

[1] 울산매일 - 돈 잘 버는 울산 … 가구당 소득, 전국평균비 325만원 많아

[2] 경상일보 - 서울-울산 아파트 10억원 이상 가격 차

[3] 중앙일보 - 아파트 대출금 갚는데 월급 70% 쓴다

[4] 통계청 KOSIS 상권별 소규모 상가 임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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