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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어

영어유치원에 대한 고민: 보내지 않기로 하다

by 엔지니어의 노트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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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에 보내야할까? 말아야할까?

저희 부부는 아이에게 영어를 최대한 많이 노출해주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 편입니다. 
둘 다 직업적인 면에서도 영어 덕을 많이 본 덕에,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공감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만 네살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영어유치원에 대해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할 때는 - 영어 노출이 중요한 건 당연하니 -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쪽에 더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수록 점차 안가는 방향으로 기울어서, 지금은 부부 모두 영어유치원에는 안보내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Photo by cottonbro studio from Pexels

 
아래는 제가 생각한 영어유치원의 장점과 단점 입니다. 

 

장점

영어유치원의 장점은 말할 것도 없이 영어에 대한 더 많은 노출입니다. 5에서 7세 사이 영어에 영유 수준으로 영어에 노출시키고, 또 ‘영유가 끝나는 시점’에 영유를 졸업한 아이들만큼 아이의 영어실력을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 실력이 상향평준화될 수 있느냐 여부는 별개로)
  

단점 - 영유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들

제가 생각한 영어유치원의 단점

첫번째 교육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이에 따라서 엉덩이 붙이고 책상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의 아이라면 맞을 수도 있겠으나, 이 나이의 아이들은 그보다는 신나게 재밌게 노는 시간이 더 행복할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습식이 아닌 놀이식 영유도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주 목적인 '영어 노출 극대화'의 장점이 일부 상쇄될 것이고, 또한 아래에 열거한 단점들은 학습식, 놀이식에 공통적으로 여전히 존재합니다.


두번째 단점은 선생님의 자격 조건입니다. 요즘 우리 세대의 육아방식에는 오은영 박사님을 포함한 육아/교육 전문가들의 조언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육아나 교육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바뀌게 되었고요. 저희 부부도 오은영박사님과 같은 유아교육 및 심리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동안 잘못알고 있던게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만큼 어떤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의 조언과 교육은 중요합니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유아의 언어발달과 유아 안전, 유아 훈육 등 "유아 교육"만을 공부하신 전문가들입니다. 반면에 영어유치원 선생님은 그러한 자격조건이 없습니다. 영어교육을 전공할 필요도, 유아교육을 전공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가에서 공인한 유아 교육기관이 아닌 "학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 부모들은 대부분 한두명의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교육해야할지 공부도 많이하고 투자도 많이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몇 년동안, 주중 내내, 하루에 부모보다 더 오랜시간을 함께 보내는 선생님들이 유아교육의 전문가인지 비전문가인지는 한번 생각해볼만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하다 못해 회사 일을 해도 기계설계는 기계공학과가 하고 프로그래밍은 컴퓨터공학과가 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맡아서 해야하는데, 초등학교 선생님도 전공자가 아니면 안되는데, 하루종일 내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건 아무나 해도 상관 없을까요? 그들이 유아교육을 전공한 전문가들만큼 교육과 정서적 케어면에서 관심과 지식이 있을까요? 그만큼 잘할 수 있을까요?
 
세번째 생각해볼만한 지점은 아이의 인지능력, 창의력, 인성 교육 등 발달에 대한 영향입니다.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사고할 수 있을텐데,  영어유치원을 다닌다고 해도 `사고의 언어’인 모국어의 수준 만큼 유창한 수준으로 영어로 표현하고 듣고 사고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당연히 독서, 작문의 수준도 모국어인 한국어만큼 풍부하기 힘듭니다. 아이들끼리 영어로 소통해야하는 경우, 소통의 수준도 모국어 대비 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들의 교육과 표현의 수준도 아이들의 영어 수준에 맞춰질 수 밖에 없고요. 결과적으로 이러한 차이로 인해 해당 시기에 발달시켜야 하는 인지능력, 창의력, 인성 교육 등에 있어서 모국어 대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우선 영어유치원을 다니게 되면 조금의 영어실력을 얻는 대가로 이 시기 자녀에게 정작 필요한 성장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6~7세는 아이들이 우리말을 익히면서 추상적 개념과 사고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사과’ ‘자동차’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말을 뛰어넘어 추상적인 어휘들을 익히게 되고, 비로소 말을 제대로 가지고 놀게 되면서 활발한 언어활동을 통해 세상과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런데 영어유치원을 다니게 되면 익숙하지 않은 영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What color is it?” “It’s red”와 같이 자신의 인지 수준보다 낮은 3~5세 수준의 어휘와 대화 수준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영어유치원과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언어 창의력과 도형 창의력 모두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선생님과 같은 분은 이 무렵의 아이들에게 말을 뺏는 것은 마치 어린 새의 날개를 부러뜨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1]

 
네번째는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첫째 공부중심 커리큘럼, 둘째 비전문가 선생님, 셋째 언어적 제약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요. 아무튼 아래 소아정신과 의사가 하신 말씀은 되새겨볼만 합니다.

“영어유치원 10곳이 생기면 소아정신과 1곳이 늘어난다는 말은 소아정신과 의사들끼리 흔히 하는 농담입니다. 여섯 살, 일곱 살은 아이들에게 어떤 시기일까, 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고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지 궁금해요. 분명 부모는 자신이 계획하는 아이의 미래와 현재의 과제를 생각하느라 지금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건너뛰었을 것입니다.”(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 [1]

위 네번째와 관련해서 질문해볼만한 건, 모국어로 선생님, 친구들과 지내는 환경과 (학습 위주의) 영어유치원에서 영어로 지내는 환경 중 어떤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더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만약 위 질문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5살~7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즐겁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영어를 조금 더 배우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자료를 알아보면서 재미있는 것은 언어학자, 유아교육 전문가, 소아정신과 등 대부분의 언어 및 유아 전문가들이 영어유치원과 같은 형태를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아이의 특성에 따라, 그리고 어떤 영어유치원이냐에 따라 정말 좋은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득보다 실이 큰 선택으로 판단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논란의 여지 없이 한결 같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다들 영어유치원에 보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남들 다 하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만 영어에 뒤쳐질 것 같은 우리의 불안감이, 아이 하나, 둘 키우는데 해줄 수 있는 좋은 건 다 해줘야한다는 맹목적인 지원이, 경제적 이유로 부담되어서 못해준다면 아이에게 미안할 것 같은 마음 때문에, 등등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면 위와 같은 이유들로 영어유치원을 보냈을 것 같기도 하고요.

Photo by Lina Kivaka from Pexels

 

아무튼 결론을 다시 말하면, 영어유치원엔 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에 대한 노출은 중요하므로,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도와줘야할까? 에 대한 고민을 해야되겠죠.
이 점에 대해서는 조지은 옥스퍼드대 언어학 교수님의 말[2]을 빌리자면,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영어 배우는 것을 ‘놀이’나 ‘재미’로 느끼면서 영어 책에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가 스스로 영어책을 읽는 과정에서 ‘단어폭발’이 일어나면 그 다음부터 아이가 보여주는 창의성의 힘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영어유치원 대신 집에서 다른 방식을 통해서 영어에 노출되도록 꾸준히 노력은 해줘야할 것입니다. 다른 방식이란 위에서 언급된 것 처럼 결국 재밌는 독서가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아래 언어학자 크라센 교수의 기사[4]를 인용하면서 마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율 독서를 경험한 아이들은 영어를 긍정적으로 대했다는 거예요.
억지로 배우지 않았으니까요.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게 영어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해요. 규칙이나 단어를 하나씩 익히기에 언어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죠. 성인이 쓰는 어휘는 약 4만~15만6000개로 추정되는데요. 이걸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설사 외운다 해도 미묘한 단어의 뉘앙스 차이까지 알 수는 없고요. 문맥 안에서 생기는 단어의 의미 차이, 복잡한 문법은 오로지 ‘읽기’를 통해서만 숙달되죠. 간혹 일반적인 영어 수업의 효과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효과가 서서히 사라졌어요. 영어에 정말 숙달된 게 아니라 단순히 외운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모국어 읽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크라센은 “모국어로 된 책을 재미있게 많이 읽으면 외국어를 읽는 능력도 상당히 발달한다”고 강조해요. 우리가 가진 ‘읽기 능력’이 제2언어에도 전이되기 때문인데요. 이 ‘읽기 능력’은 모국어 독서를 통해 획득하는 게 가장 쉽고, 빠릅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이어진다는 것도 유의미한 지점이에요. 먼저 한국어책을 즐겁게 읽는 독자가 영어로도 책을 읽는 사람이 되는 거죠. 

 


[1] 경향신문 - 영어유치원, ‘적기의 성장’ 희생시켜 득보다 실
[2] 경향신문-조지은 옥스퍼드대 언어학 교수 "아이를 바이링구얼로 키우고 싶다고요? '사고의 언어' 형성이 먼저" (조지은 언어의 아이들)
[3] 남양아이 - 우리아이 첫 교육기관 고르기 - 영어유치원

[4] 중앙일보 - ”영어유치원, 아무 소용 없다” 언어학자의 도발 (언어학자 크라센 "읽기혁명")
 
그 외 참고한 자료
경향신문 기획연재 - 아깝다, 영어 헛고생
어린이집 유치원 저는 이렇게 골랐어요 (베싸TV)
EBS 클래스e 유아교육과 김경란 교수 - 영어 유치원,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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